복길, 『아무튼, 예능』, 코난북스, 2019. 닉네임 '복길'님의 글을 종종 본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 비평을 맛깔나게 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 분의 책이 나왔다고 해서 찾아서 읽어보았다. 매 소제목이 한두명의 여성 예능인과 관련된 마지막 장이 기억에 남는다. 27p "이제 크게 바라는 건 없다. 진짜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거창한 말들에 속지 않고 매일 무언가가 쌓이고 걸러지는 '그저 그런 하루'가 필요하다." 32p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만드는 것도 모두 서울에 가야만 이루어 지는 꿈이었고 왠지 지방으로 '밀려난다'는 마이너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중요했다. 내가 걸었던 거리가 오늘 저녁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나오고, TV 속 사람들이 간 곳을 내일 아침 눈 뜨면 걸어볼 수 있어야..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책을 잘못빌렸다. 나는 왜 이 책을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했을까? 알았다면 겁이 나서 못 읽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며칠간 잠을 뒤척였다. 다른 이유가 없었으니 책의 영향인 것 같다. 하지만 읽는걸 멈출 수가 없었다. 광주 이야기다.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광주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잘 없었다. 광주 이후 태어났고 518는 아주 기초적인 것만 알고있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알지못했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고 희생됐고 희생자로 남지않으려했고 또 누군가들은 나쁘다, 나빴다. 머리로 알고있던 '나쁘다'는 생각이 마음까지 내려왔다. 화가 났다. 기억에 남는 문장. 154p "일은 당신에게 고독을 보장했다. 일과 짧은 휴식과 잠의 규칙적인 리듬 속에서 혼자 삶을 ..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문학동네, 2015. 이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을 우연히 읽었다. 그리고 읽기로 결심했다. 이 문장은 아는 사람은 아는 유명한 문장일거다. 여기에서는 148p에 나온다. 남자와 여자, 아주머니의 각각의 입장이 있어서 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82-83pp "내가 있어서 조금이라도 삶이 나아진 사람이 있을까. 난 그냥 일벌 한마리인 거야. 여왕벌을 위해 나무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꿀을 따지. 나 같은 게 천마리, 만 머리, 십만 마리가 더 있어. 다른 일벌한테, 아니면 여왕벌한테, 내가 무슨 의미일까. 아니, 내가 하는 일이 일벌이 따오는 꿀 한두 방울의 가치라도 있는 걸까? 그래, 내가 자존감이 부족한 거지. 나도 알아. 남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임성순, 『자기개발의 정석』, 민음사, 2016. 언젠가 책 소개에서 관심있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소개 내용이 무엇인지는 잊은 채로 읽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가 이 책을 기억한 이유는 소재가 독특해서였다는걸 알았다. 주인공은 부장직함을 단 중년남성이고 그의 삶은 나와는 다른 경험들이 가득해서 초반에는 당황스러웠다. 중반 이후로는 집중해서 읽었다. 재미있는 문장들이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30-31pp의 '근의공식-스칼라 삼중곱의 쐐기곱+삼중 벡터의 기하학적인 팽창-어닝쇼크(회사의 주가가 하한가)-중심은 상한가-운기조식에 실패하면 닥친다는 주화입마' 부분이 인상깊었다.
씨리얼, 『나의 가해자들에게』, 알에이치코리아, 2019. 지난 봄에 우연히 한 영상을 봤다. 시리즈였다. 하나하나 집중해서 봤다. 그리고 영상이 나온지 5개월 뒤에 책(인터뷰집)이 나왔다. 영상 시리즈의 제목은 피해자 중심이라 책은 가해자를 부각시키는 로 정했다고 한다. 피해자, 방관자, 가해자. 한 가지 정체성만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여러 차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많을 거다.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겪으면 힘들다. 근데 가해자들은 그걸 알고 괴롭힌다. 또는 자기는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아닌 이상 피해자가 아프단 얘기만을 반복하는 교육은 적절하지않다고 생각한다. 50-51pp 가연 "커가면서 이런 게 얄미웠어요. 가해를 했던 애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요. 어떤 애들은 잘 안..
정세랑, 『지구에서 한아뿐』, 네오픽션, 2012. 아, 좋아. 사람들이 정세랑 작가님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그 어떤 소설보다 달콤했다.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게 달콤할 수가! SF 소설에는 관심이 없었다. 최근에 읽은 '제 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이 처음으로 SF 소설인줄 알고도 고른 책이다. 지난 번에 읽은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건조해서 SF 소설은 그런 줄 알았다. 과학이 담긴 이야기는 그런 줄 알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소설이 건조하다는 것은 내 편견이란 것을 깨달았다. 잘 읽힌다. 장시간 이동할 때 읽을 책으로 고른건데 그동안 거의 다 읽었다. 150p "쉬운 과정은 아니었으나 그런 결론에 이르자 H는 떠나버린 예전의 K에..
송해나 지음, 이사림 그림,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임신일기, 문예출판사, 2019. 임신과 출산의 민낯을 보여준다. 임신과 출산 과정의 고통을 보여준다. 한편, 작가님이 이 경험은 70억명의 사람이 있다면 70억개의 경험이 있고, 개개인의 경험이 다를 수 있다고 잊을만하면 언급한 점도 좋았다. 누군가는 작가님의 경험보다 수월할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더 버거울 수도 있다는 점, 그러므로 경험해봤다고 현재 임신과 출산으로 힘들어하는 이에게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지나고나면 경험이 희석되기 마련이라는 점도 지적한다. 작가님은 임신출산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서,..
김초엽, 김혜진, 오정연, 김선호, 이루카,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관내분실+우리가 및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TRS가 돌보고 있습니다+마지막 로그+라디오 장례식+독립의 오단계), 허블, 2018. SF소설은 접해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생일 때 그렸던 상상화에서처럼 어려운 물리학과 복잡한 생물학이 복잡하게 얽힌 무언가라고 짐작해왔을 뿐이다. 그래서 무척 어려울거라고, 흥미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작품집을 읽으면서 과학소설이라도 잘 쓴 소설은 최소한의 설명으로 독자에게 설정을 이해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 관심사에 따라 좀 더 흥미로웠던 것과 덜 흥미로웠던 것이 있지만 모든 작품이 흥미로운 생각을 할 여지를 주었다. 상상하고 고민할 여지가 있단 점이 SF소설의 매력인가보다.
민서영, 『썅년의 미학』, 위스덤하우스, 2018. 188-189pp. “지금의 내가 모텔이 싫은 이유는 비단 그 자식과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후다닥 씻고, 후다닥 섹스 하고, 후다닥 나오는 대실 문화, 그것만은 아니었다. 방마다 비치되어 있는 커다란 샴푸와 린스통에 뭔가 섞여 있다는 도시괴담까지는 무시할 수 있다. (중략) 그나마도 그걸 상대방이 인지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의 알량한 성적 만족에만 관심 있다. 그런데, 그러니까 어차피 별 상관없다면 내가 정하는 곳으로 가도 되잖아? 그런데 그런 섹스가 급한 ‘응급 상황’에서도 가성비를 찾는 남자라면 앞으로의 연애도 불 불 보듯 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안전을 위해 그 정도도 참지 못하고, 그정도도 이해할 생각이 없는..
서민수, 『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 SISO, 2019. 학교전담경찰관이었고 지금도 꾸준히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는 지은이가 일하면서 느낀 일들을 소개해주는 책이었다. 내가 가진 신념과 반하는 내용도 있어서 초반에는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겪는 사람이 느낀 것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학교밖청소년들, 건너건너 아는 학교밖청소년들, 그리고 내가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든 학교밖청소년들을 떠올렸다.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어느정도 이하의 젊은이들에게 적용가능한 이야기 같았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과 동생들을 생각했고 그들과 함께일때 더욱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잘 듣고, 잘 반응하고, 더 집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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