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꼼

책 먹는 사람

이아무 2016. 11. 17. 11:47

 책을 차려놓고 와구와구 먹는 것을 꿈꾼다. 나는 편식한다. 아무 책이나 읽지는 않는다. 흥미를 가는 책을 찾아서 읽는다. 어느 책이 좋다고 하면 찾아보고 내 취향과 맞을까 생각해본다. 읽을만하다고 판단되면 하루종일 그 책 생각 뿐이다.

 먹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책만큼은 아닌 것 같다. 책과 음식의 차이는 책은 누구든 접근할 수 있지만 음식은 아무나 접근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책은 도서관에 신청하면 대부분의 경우 한 달 안에 내 손에 쥘 수 있었다. 며칠에 걸쳐서 음미할 수 있고 아무데서나 먹어도 그 누구도 신경쓰지않는다. 내 통장 잔고가 어떻든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

 음식은 다르다. 잔고를 생각해야하고 누릴 장소도 책보다는 제한되어있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음식들은 적당한 거리에 위치한 적당한 가격의 음식들이었다. 못 먹어본 음식도 많다. 다 먹어봤다면 특정 음식에 사로잡혀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먹은 음식들은 하루종일 생각날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다. 경험의 부족이 내가 음식보다 책에 대해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에도 책을 참 좋아했다. 좋다는 책을 먹어치우곤했는데 지금은 읽었다는 기억조차도 안 난다. '마담 보바리'에 관심이 생겨 검색했다가 연관 검색어에 '춘희'가 나왔다. 분명 10년 전에 읽었다. 책 제목만 기억이 날 뿐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않는다. 계속 관심있는 책이 생겨서 한 번 읽은 책은 자꾸만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내용이 생각나지않아도 자꾸만 밀린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 하는 내 기억력이 원망스럽기도 한데,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는 못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하지만 읽은 기억은 있지만 내용은 비어있는 책을 다시 채우고싶은 욕망은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적어도 내 자신은 제목만 기억나는 책을 머릿속 서재에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 것만 못 하다고 느낀다. 이름이 있으면 그 안의 내용물도 채워주는 것이 그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진다.

 책과 나의 욕망 사이의 중재가 필요하다. 일상과 책의 균형, 새로 읽고 싶은 책과 내용을 채워야 할 책의 균형 같은 것이다. 책을 보면 자꾸만 읽고싶어서 일부러 도서관과 서점을 피해다닌다. 볼 일이 있어도 주위를 둘러보지않고 딱 할 일만 하고 오려고한다. 매번 다짐하지만 완벽하게 수행하지는 못 하고 있다. 오늘도 도서관에 갈 일이 있는데, 하기로 정한 일만 하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