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3] 여혐민국

이아무 2019. 6. 23. 17:16

양파(주한나), 『여혐민국』, 베리북, 2017.

개인의 변화보다는 사회시스템의 변화의 중요성을 다룬다.

76p
"서른 이후로 고용이 불안정하고, 다시 취업한다는 보정도 없고, 그런 식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할 때, 내 평생을 좌우할 남자가 어떤 경제력이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인간 역사 내내 여성의 고용이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본능적으로 남자의 경제력을 좀 더 중시하게 되었으리라 본다. 실제로 여성의 소득이 높고 고용이 안정된 나라에서는 여자가 더 많이 버는 집도 많다."
"인간은 누구든지 주체적으로 삶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면 그것은 권력이 아니다. 구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절대권력을 가진 것처럼 느낄 수 있겠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122-123pp. 
“생수통은 역차별이 아니라 사실 여자에 대한 차별의 증거다. 생각해보자. 어딜 가나 일하는 사람이 100퍼센트 여자고 생수통 사는 사람, 쓰는 사람 다 여자라고 해도 생수통을 그 정도 무게로 만들었을까? 아니지. 딱 성인 여자가 들 만한 무게로 만들었겠지. 여자들이 입는 옷을 남성복 패턴으로 디자인 하지 않는 것처럼. 그럼 생수통은? 생수통 회사가 생수통을 디자인 하던 시절엔 사무실의 여성 소비자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으니 남자들이나 쉽게 들 만한 무게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93p 
“사실 아이 낳기가 너무 무서웠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그랬다.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지면 그냥 짐 싸서 나가면 되니까. 누구에게 기댈 필요도 없고, 아쉬울 일도 없고, 그냥 그렇게 쉽게 끝낼 수 있으니까. 남편과 싸운 적도 없고 상당히 행복한 결혼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객관적 지표로 봐도 내가 손해일 것 같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로 들어간다는 게 미친듯이 두려웠다. 아이를 낳으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너무 이쁘다고 하지만. 만약 안 이쁘면? 행복하지 않으면? 게다가 애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인데 만일 내가 실직하면? 남편과 헤어지면? 내 가 좋은 엄마가 아니라면? 아이가 없으면 백배로 단순하고 어느 정도 계산과 예측이 가능한 내 삶이, 아이가 생김으로써 통제력을 상실할까봐 무서웠다.” 

208p 
“지금 내가 몸담은 시스템과 노동환경에서는, 개인이 자란 환경이 좀 여성혐오적이더라 하더라도 그걸 굳이 드러내지 않으며 서로 존중하고 피해 끼치지 않고 일을 하는게 가능하다. 그래서 진짜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가는 열악하고 경쟁적인 환경이라면 어떨까? 안 그래도 힘든데 내가 더 희생해야 한다고 느끼면 직원들 사이에 쉽게 긴장이 고조되고 여성혐오적 태도가 더 쉽게 튀어나오지 않을까.” 

284p 
“누군가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별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것, 이게 특권이다. 페미니즘에 전혀 신경 안쓰고 그게 뭔지 모르는 것,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페미니스트를 이해하지 않아도 삶에 지장 없는 것. 여자든 남자든 그게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