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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한국, 남자

이아무 2019. 2. 7. 13:59

최태섭, 『한국, 남자』, 은행나무, 2018.

 

근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 함께 한국 남성과 여성혐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84p

"가장 부당한 취급을 당하는 여성과 비-남성들의 입장을 잠시 잊고 생각해보면, 남성 지배란 소수의 권력을 가진 남성들을 위해 다수의 별 볼일 없는 남성들이 열과 성을 다해 복무하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즉 지배의 비용은 남성으로 호명된 모두가 지고 있지만, 지배를 통해 얻어낸 산물은 일부가 독식하는 구조다. 이 일부는 동료 지배자들을 위한 배당금도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는다. 이들이 주는 배당금은 여성과 비-남성에게 행해지는 차별이다. 즉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들의 발밑에 자신보다 더 못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며 얻는 위안과 약간의 반사이익을 위해 가부장제의 수호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172-173pp

"남성-생계 부양자와 여성-전업 주부가 꾸리는 온전한 중산층 가족은 한국 사회에서 일부에게만 허락되어왔던 것이다. 현실은 여성들도 어떻게든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동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그런 경제활동 여부에 상관없이 육아와 가사라는 거대한 노동이 온전히 기혼 여성의 몫으로 배정되었다. 아버지들처럼 밤거리를 누비며 외로움을 토로하는 것은 어머니들에게는 한 번도 허락된 적 없는 자유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차리고, 가사를 돌보다가 틈틈이 자녀와 남편에게 연락을 하면서 가족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노력도 없이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가족에게서 알아서 우러나오길 바란다. 이러니 돈 버는 기계라는 푸념은 별로 의미가 없어진다. 이미 스스로가 돈만 벌면 나머지는 알아서 다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99-200pp

"군 복무 경험이 일으키는 문제는 단순히 군 내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삶 전반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반인권적 병영 문화를 경험한 이들은 비교적 나은 환경의 군 경험을 했던 이들보다 낮은 삶의 만족도와 자존감을 보였고, 성 역할 갈등, 여성혐오적 성향이 높게 나타났다. 인권 침해적인 군 경험이 이후의 인생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당사자들에 의한 해결은 요원하다. 당사자들이 문제의 원인에 대해 질문하길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거부는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이라는 대한민국의 건국 이래 꾸준하게 통치 세력을 정당화해준 요인으로부터 나온다. (-중략-) 하지만 군이 북한의 가장 큰 위협이라 주장하는 핵무기에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정말 '60만 대군'일까? 실제적인 군사 행동은 최후의 상황일 뿐, 평시의 군은 민주주의 논리에 따라 유지되어야 할 시스템이다. 2018년에 밝혀진 국군 기무 사령부의 계엄령 선포 계획은 군이 여전히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때문에 더욱더 의무병제하의 군인은 군복을 입은 시민이지 국가나 군 간부들의 노예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208P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예쁘면서 적당히 백치미가 있는 밝은 여자'('된장녀'의 반대)는 섹스의 상대로 선망된다. 된장녀에 대한 불만의 핵심은 그들의 사치와 허영이 아니라, 남자들의 성의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넘어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한 분노다. 많은 남자들이 이성 간의 관계를 돈을 넣으면 섹스가 나오는 자판기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된장녀는 일종의 고장 난 자판기인 셈이다."

 

 

227-228pp

"아이러니한 점은, 그동안 여성 혐오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왔던 '남자에게 의존하는 여자'의 상에 정확하게 반하는 메세지인 "Girls do not need a Prince"에 대해 남자들이 분노했다는 점이다. 가능한 독해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예의 된장녀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의존하지 않는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의존은 무거운 부담이 되지는 않지만 존재감을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복잡한 형식을 띠고 있다. (-중략-) 그러므로 더 정확하게는 자신에게 정말로 경제적/사회적 의존을 하길 바란다기보다는, 적은 노력과 투자로 의존에 뒤따르는 신뢰와 존경만을 보내주길 바라는 유아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의존을 하지 말거나, 왕자를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그저 메갈 혹은 여성이 하는 모든 행동과 말을 비난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리고 진실은 이 두 개가 섞인 어딘가쯤에 있을 것이다."

 

 

267-268pp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여자를 걱정하던 남자 청소년들처럼(통계에서 남성 중 청소년층에서 이런 이유로 여성혐오가 생긴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 모든 향수와 불만과 분노에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성이 결여되고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렇게 여자들이 불만이라면 여자와의 관계를 단절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그런 주장은 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화법이 알려주는 것은 남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여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 사회는) 남자들을 동원하기 위해, 현재의 삶을 유보하고 미래를 위한 몰입으로 이끌기 위해, 불만을 잠재우고 순치하기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여자의 환상을 남자들에게 제공하고, 교육하고, 방치했다. 동등한 주체이자 인간이자 동료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성별화되고, 육화되고, 이념화되고, 비하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를 남자들에게 가르쳐왔다. 남자들은 진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의존해줄 여자를 찾아야 한다는 이상한 성인식을 치러왔고, 스스로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서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은 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들이다."

 

☞이 문단은 '자신에게 의존하는 여성이 있어야만 진정한 '남자'가 된다고 교육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남성은 여성에게 의존하게 된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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