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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반짝반짝 빛나는

이아무 2019. 5. 30. 20:56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반짝반짝 빛나는 (きらきらひかる)』, 소담출판사, 2001.

80p (쇼코)
“나는 일방적으로 지껄여대고는, 낮잠을 자겠노라 말하고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시트를 둘둘 말고 몸을 웅크리고 울었다. 내가 나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다. 소리를 죽여 우느라, 목과 눈과 코가 시큰시큰 아프고 뜨겁고, 울음을 삼킬 때마다 고통스러워 엉망진창이 되었다. 잠시 후에 문이 빼꼼 열리고, 다녀올게, 란 무츠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없을 때.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가시 돋힌 나를 느끼고 별거 아닌일인 것같은 데도 할퀴는 나를 느끼고 너무나 속상할 때가 있다. 내가 미운건데, 괜히 네게.

100p (무츠키)
““무츠키는 나를 정신병 환자라 여기고 있는 거지. 아저씨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다니, 내가 이상해진 거라고 생각했지?”
 사실은 그런 게 아닌데, 라고 말하고 쇼코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무츠키는 아무것도 몰라.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단 말이야. 쇼코는 그렇게 호소하면서 엉엉거리고,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답답함에 흥분하여, 점점 비극적인 모습이 되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라고 말하고 나는 그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쇼코가 울음을 그치기를 기다렸다.”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당장은 그 기억이 뭔지 생각이 안 났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 무엇이었는지 생각났다. 내가 과거에 무엇을 힘들어했고 그 때 내뱉지는 못했던 생각이 기억에 남아있었던 거였다. 제정신 아닌거 알았는데 인정하기 싫었던 기억.

183p (쇼코)
“땀과 눈물로 얼굴에 딱 달라붙은 머리칼을 무츠키가 천천히 끌어올려준다. 무츠키 손바닥의, 크고 마르고 부드러운 감촉. 나는 너무도 서글퍼서 무츠키의 팔 속에서 몸을 비틀었다.
“쇼코?”
무츠키처럼 선량한 사람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가족으로서의 자상함과 우정, 그저 그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때로 견딜 수 없이 괴로워진다. 온몸이 애처로운 과일처럼 되어버린다.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는 손바닥과 피어스를 끼어 주는 손가락이, 나의 악의를 비난한다.
“놔, 이제 괜찮아.”
무츠키와 잘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태연하게 부드럽고 자상한 무츠키를 견딜 수 없다.”

넓게 느껴지는 애정과 다정함에 감사함보다 자격지심이 들 때가 있었다. 이해하지못하더라도 이해하려고해주는 태도. 그리고 나에게 그런 태도를 취해줄거라는 믿음. 많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그 따스함이 두렵다. 금방 차가워질까봐 겁을 낸다.

206-207pp. (옮긴이의 글)
“그러니 부부이면서도 일상적인 사랑의 감정과 표현을 교류하기에는 어긋남이 있지요.
 이 어긋남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과 사회적 인식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어긋남은 필연적으로 숱한 감정의 분화와 진화를 낳지요.”

주류사회에서 ‘어긋나는’ 면이 있는 두 사람의 교류가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과 사회적 인식을 대변한다’는 말이 콕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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