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스완슨(Peter Swanson), 죽여마땅한 사람들(The Kind Worth Killing), 노진선 역, 푸른숲, 2016. ‘저 사람 그냥 죽었으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게 발단이었다. 나는 그들을 털 끝도 건드리지않았으나 소설 안에서는 건드린다. 처음에는 얼른 죽였으면 했다. 언젠가부터 권선징악은 믿지 않게 되었고 죽이고 잘 빠져나갈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전체 3장 중 마지막장에 들어섰을 때에는 겁이 났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죽음에 상응하는, 또는 그 이상의 죄는 무엇이며 죽음은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닌 것일까. 세상에 해만 끼치기에 사라져 마땅한 목숨은 있는가. 소설 속 인물들은 태연한데 내가 점점 불안해졌다. 다 읽고 나니 후련하다. 이제..
썬비, 『월화수목육아일』, 백도씨, 2017. 작가가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기록한 그림일기를 묶은 책이다. 작가님은 아기를 싫어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일상에서 행복함을 느낀다고 한다.나는 남의 아기는 귀여워한다. 예쁜 면만 볼 수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아기고 24시간 케어해야한다면 자신이 없다. 아기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좋은 일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내 자신도 겨우 데리고 산다는 생각을 한다. 좀 더 어렸을 때에는 당연하게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나에게 적절한 생활방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누군가는 아이를 낳아보면 없던 모성애/부성애도 생긴다고 하는데, 낳아서 확인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나 크다. 충분히 낳고싶고, ..
록산 게이(Roxane Gay), 『나쁜 페미니스트』, 노지양 역, 사이행성, 2016. 15p“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완벽하지않아도 괜찮아. 왜 페미니스트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가져다대는가. 왜 한 가지 모습으로만 있어야 하는가. 페미니스트도 인간이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73p“우리 모두 남들이 모르는 자기만의 역사가 있다. 그 역사를 극복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순간 어떤 작은 일이 일어나고 누군가의 악의 없는 말이나 행동 하나에서 나는 극복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과거는 이미..
배성태, 『구름 껴도 맑음』, 중앙일보플러스, 2016. 안녕? 책 같이 읽은 사람아. 이렇게 쓰면 나중에 글 지워버려야할지도 모르겠다. 원래 블로그가 사적인거지.최근에 페이스북에서 자주 접한 일러스트가 책으로 있다길래 빌렸어요.일부는 같이 읽었지요. 꽤 달달하지요? 작가의 신혼일기로 알고있는데, 현실성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하지만 1장 끝에 결혼 허락받는 부분 봤죠? 결혼은 현실이지. 그 부분이 있어서 현실성을 얻은 책이라 생각해요.책에서는 싸우는 것조차 달콤한데 실제론 안 그렇겠지? 화난 당사자들은 화나겠지? 먼일이잖아. 아직 졸업도 해야하고 하고싶은 공부도 더 있잖아.나는 연애는 공통점으로 시작해서 차이점을 찾는 과정이라는 말에 공감해요. 처음에도 다른걸 알았지만 같이 지내면서 더 많은 차이점을 ..
대릴 커닝엄, 정신병동 이야기(증보판), 권예리 옮김, 이숲, 2014.Darryl Cunningham, Psychiatric Tales(Expanded Edition) 글쓴이/그린이는 정신과 병동에서 정신보건간호사 수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렸다. 치매, 망상, 자해, 반사회적 인격 장애, 정신분열, 양극성 장애, 우울증, 자살 충동 등 한 번쯤은 들어본 정신질환들을 다루고 있다. 각 주제 끝에는 간단한 해설이 있다.조금씩이라도 접해보았지만 책을 읽어보니 그동안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주변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겠다. "의사나 보호자가 망상증이 있는 환자를 대할 때 가장 큰 문제는 환자의 망상에 동의하면 망상을 더욱 강화하는 위험이 따르고, 그렇다고 반박하면 반발이나 폭력적인 ..
정희진, 아주 친밀한 폭력, 교양인, 2016. “상처의 치유는 문제를 덮어 둠(re-cover)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들춰내어(dis-cover) 자신의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재발견(discover)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건을 잊어라’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가능한 치유 방법을 주문하는 것일 뿐이다. 실제적인 상처의 치유는 폭력당한 경험을 잊으려는 노력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재해석할 때 가능하며, 이때 그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생존자(survivor)가 된다.”(56p) 다시 사간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지 못했던 때로, 겪지 않은 때로 돌아가고자 했다. 덮고 잊으려했으나 더 괴로워질 뿐이었다. 거리를 두고, 꺼내어 어떻게 해석할지 ..
김동영,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달, 2013. 원하는 나이의 외모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배경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불사의 몸을 원해왔지만, 막상 불사에 가까운 삶이 가능해졌을 때 생길 세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생각해보지않는 것 같다. “언젠가부터 친구를 사귀는 것이 두려워졌다. 더 이상 친구들이 나보다 먼저 죽거나 나와 같이 하루를 버텨내듯 망각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96p) “어쩌면 아는 것은 과거고, 의심하는 건 현재이며, 모르는 것은 미래인지도 모른다.과거는 지독하건 좋건 간에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남기 마련이고, 현재는 그저 늘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놓을 수 없는 채로, 그저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Reclaim the Lineage: No more Lonely Feminists 이민경,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외롭지않은 페미니즘, 봄알람, 2016 줄여서 '외않페'라고 불렀다. 줄여놓으면 맞춤법이 틀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더 눈에 밟혔던 책이다.딱딱한 역사책일까봐 읽기가 망설여졌었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역사, 한국의 역사, 계의 역사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의 30% 정도는 내 이야기로 채울 수 있는 책이라 다 읽었을 때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책이 되었다. 나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이을 수 있게 도와줬다. 59쪽에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꼽은 '성폭력 추방에 영향을 미친 10대 사건'의 사건명이 적혀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 가면 해당 사..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 바다출판사, 2016. 성인이라면 청소년 시기를 거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인권은 억압되고 있다. 나 또한 청소년혐오를 해왔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닫기 시작했다. 처음 읽을 때는 당장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찬찬히 생각하느라 독서 속도가 느렸다. 어느정도 읽고난 다음에는 속도가 붙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청소년의 연애나 관계를 교칙이나 가정의 압박 같은 것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여기는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문제’를 제대로 짚어낼 때, 일반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법과 성적 의사소통 방식을 그대로 가르치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제공하는 등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데에 힘쓸 수 있을 것이다(한..